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홍범도 장군을 예우하는데 있어 티끌만큼의 소홀함도 없을 것"이라고 25일 밝혔다.

 박 장관은 이날 대전 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던 장군의 영전에 깊은 추모와 존경의 뜻을 표하며,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어 “홍범도 장군과 같은 독립유공자를 최고로 예우하는 것은 보훈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며 "이 부분은 국민이 확실히 믿어도 된다. 보훈부 장관으로서 그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더 세심히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박 장관이 독립유공자 예우에 있어 국민을 언급한 것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분석된다.

 박 장관은 이같은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나열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는 점을 감안해 홍 장군의 업적을 부각하며 민심을 달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는 "을미사변 직후 의병을 일으켜 항일의 기치를 높이 든 홍범도 장군은 조국을 위해 직접 총칼을 들어 용감하게 싸우기를 망설이지 않았다"며 "모두가 아는 것처럼 홍범도 장군께서는 독립군을 이끌고 봉오동의 승전을 이뤄 냈다"며 "봉오동 전투의 빛나는 승전으로 독립군의 사기가 크게 진작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독립군은 그 승리로 진작된 사기를 바탕삼아 청산리의 전장에서 다시 한번 일제에 맞서 싸워 크게 이기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며 "독립의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는,그야말로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큰 업적을 남겼다"고 했다.

 홍범도 장군은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켰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의병과 동포들을 중심으로 대한독립군을 창설했고, 국내에 잠입하여 혜산진·자성군 등에서 일본군을 급습해 전과를 거뒀다.

 또한, 1920년 일제의 독립군 탄압 계획 등에 맞서 독립군부대를 지휘, 일본군 대부대를 무찌른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1943년, 76세의 일기로 순국하기 전까지 연해주에서 후진 양성에 주력했다. 정부는 장군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2021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유공자 포상이 시작된 1962년, 홍범도 장군을 서훈하고, 예우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 왔다"며 "앞으로 그 예우에는 티끌만큼의 소홀함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마지막으로 홍범도 장군께 다시 한번 깊은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친다"며 추모사를 마쳤다.

 앞서 육군사관학교는 지난 8월 31일 충무관 입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외부로 이전하고, 입구와 내부에 배치된 5위의 독립운동가 흉상도 교정 내로 옮긴다고 밝혔다. 공산당 이력이 있는 홍 장군 흉상이 생도 교육시설 '충무관' 입구에 설치돼 있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홍 장군 흉상 이전을 놓고 국방부와 독립유공자단체 간에는 여전히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날 행사는 박민식 장관을 비롯해 우원식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력 보고, 추모사, 헌화·분향, 기념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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