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업계 일본 제품 불매운동 후유증이 커지고 있다.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에 나서면서 '노재팬' 운동 직격탄을 입었다. 슈에무라는 16년 만에 국내 철수를 결정했다. 혐한 논란을 일으킨 DHC는 CJ올리브영, 쿠팡 등 H&B스토어와 이커머스 등에서 판매가 중단됐다. 반면 코로나19로 고전한 국내 화장품은 일본에서 한류 열풍을 타고 역대 최대 수준 수출을 기록했다. 현지에서 4차 한류 붐이 일어나면서 한국 제품 관심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크리스티앙 마르코스 아르나이 로레알코리아 대표이사는 지난 17일 사내 이메일을 통해 슈에무라 임직원에게 한국 시장 철수 사실을 알렸다. 아르나이 대표는 "올해 9월 말까지 슈에무라 브랜드 국내 사업을 종료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음을 전달했다"며 "한국에서 성장 잠재력이 큰 브랜드에 집중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극대화하고, 국내 화장품시장 카테고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내 슈에무라 사업을 종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슈에무라는 77개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백화점 35개, 시코르 27개, 올리브영 9개 매장에 입점해 있다. 일본 메이크업 아티스트 우에무라 슈가 1967년 만든 브랜드다. 2004년 로레알 그룹에 인수됐다. 다음 해부터 한국에서 영업했다. 로레알그룹에 속해 있지만, 생산은 여전히 일본에서 이뤄지고 있다. 2019년 일본 불매운동 당시 백화점 매출이 15% 감소하는 등 타격을 입었다.

로레알코리아는 일본 불매운동 때문만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온·오프라인 매장 운영을 단계적으로 종료할 것"이라며 "전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로컬시장 수요를 기반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정기적으로 검토해 시장 전략을 조정한다. 9월 이후부터는 면세점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DHC는 일본 화장품 불매운동 중심에 서 있다. 2019년 자회사 DHC TV 방송에서 "독도는 예로부터 일본 영토다" "일본이 한글을 통일시켜 지금의 한글이 탄생했다" 등의 망언을 했다. 1년 뒤인 지난해 12월 요시다 요시아키 DHC 회장은 홈페이지에 공개한 메시지에서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을 비하하는 '존'(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써 반일감정이 격화됐다.

DHC는 한 때 국내에서 연매출 470억원을 올린 인기 브랜드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면서 올리브영을 비롯해 랄라블라, 롭스 등 H&B 스토어에서 선제적으로 판매를 중단했다. 쿠팡과 11번가, G마켓, 옥션, 위메프, 티몬 등도 현재까지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LG생활건강은 일본 불매 운동과 함께 방사선 피폭 피해 우려가 커지자 발빠르게 대처했다. 지난달 9일부터 일본에서 제조한 '피지오겔 DMT 보디로션' 400㎖ 국내 판매를 중단했다. 태국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만 국내 유통·판매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6월 피지오겔 아시아·북미 사업권을 인수한 후 온라인에서 판매했다. 올해 1월부터 태국 현지 공장 대신 일본 자회사가 인수한 사이타마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 국내 소비자 불신이 높아졌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일본 제조 시설은 의약품 제조 품질 관리 기준과 의약부외품 인증을 받은 안전한 생산 시설"이라면서도 "소비자 우려와 요구사항을 반영해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내 화장품은 일본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등 K팝 가수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 제품 관심이 크게 늘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화장품 일본 수출액은 전년 보다 59.2% 증가한 6억3892만 달러(7200억원)다.

특히 에이블씨엔씨, 네이처리퍼블릭 등 1세대 로드숍이 일본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이블씨엔씨 '미샤 쿠션 파운데이션'은 지난해 일본에서 누적 판매량 2000만 개를 돌파했다. 현지에서 선보인지 5년3개월 만이다. 출시 후 매일 1만719개씩 팔렸다. 쿠션 형태 파운데이션이 생소한 일본에서 입소문을 타며 판매가 급증했다. 투명하고 하얀 피부 표현을 중시하는 일본 소비자 눈도장을 받으며 첫 해에만 30만 개 이상 판매했다. 일본 경제신문이 발행하는 '니케이 트렌디'에 화장품으로는 유일하게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다. '커버력이 뛰어나면서도 얇게 발리는 매직쿠션이 일본 젊은 여성 필수품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네이처리퍼블릭도 일본 화장품 시장에서 꾸준히 성장 중이다. 뛰어난 제품력과 진정성있는 브랜드 스토리, 현지화 마케팅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현지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라쿠텐에서 지난해 12월 '월간 MVP 숍'으로 선정됐다. 5월 라쿠텐 스토어 오픈 후 7~8월에 이어 세 번째다. 한 달간 소비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최상위 1% 브랜드에 수여한다.

대표 제품 '그린더마 마일드 시카' 라인은 현지에서 피부 진정케어 수요가 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자연 친화적인 성분과 순한 사용감 등으로 재구매율도 높다. '비타페어C' 라인은 잡티없이 깨끗한 피부를 선호하는 트렌드에 따라 인기몰이 중이다. 전속모델인 그룹 'NCT 127'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4차 한류 붐이 일면서 한국 화장품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가격과 품질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일본 내 국내 화장품 점유율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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